국외편 잡기장 한구절

170804. 여전히 사랑과 희생과 유다와 도마가 함께 한다.

나그네수복 2021. 11. 5. 07:17

 

스포르 체스 코 성에는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고뇌가 있다.

 

한 평생 길을 헤메였어도 길은 카오스로다

내 일생 이 세상 소풍이 이만큼만 내 것이라

붉은 석양빛은 금방이라도 밤에 밀려나는 설움이구나

정녕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났다는 것은 무엇이었나.

 

메켈란젤로는 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타로 활짝 피어나

스포르 체스 코 성의 미완성 피에타로 저물었다.

중세의 거대한 철벽으로 둘러싸인 철갑이 호위하는 뜰

장방형 너른 푸른 잔디에 키 작은 막대기 하나 꽂혀있고

피에타는 흑백 사진이 되어 바람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무너 저버린 형체는 돌인 듯 사람인 듯 생기다 말고

베드로 성당의 화려함은 교황 따라 영원무궁하련만

무딘 망치 자국으로  남아 뭉텅 거리고 파쇄되니 고통스럽다 

승천을 한으로 남긴 이무기는 멸진의 아픔으로 고뇌 중이다.

종말을 목전에 두고 을씨년스러운 상실감이 허공을 찌른다

 

저쯤 로마를 향한 개선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승전을 몰아 대는 마차는 요란스럽게 과거를 구르고 있고

성문 앞 광장에는 짚풀 더미 속에서 자동차 경주가 한창이다.

귀청이 떨어져 가는 현대의 굉음은 여전히 질주 중이다.

 

근처 성당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어

여전히 사랑과 희생과 유다와 도마가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