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편 잡기장 한구절

170805. 경멸로 던져버리고 지하철 타러 향한다.

나그네수복 2021. 10. 30. 06:49

 

 

밀라노 대성당 광장의 여유

 

지중해의 태양열은 한 자락 이불로 좌악 펼쳐있다.

한낮의 더위는 느릿느릿 곤한 피로를 온몸에 퍼트리고

적선달라는 동정함 열어놓고 손 내미는 외로운 악사는

언제라도 떠날듯 한가득 행낭보따리 곁에 두고

남루한 긴 코트에 쌓인채 간절한 나팔소리 내 뱉는다

베사메 무초의 긴 여운이 두루말이 휴지처럼 꼬리를 흔든다.

 

반바지 긴바지 흰모자 핑크모자 흐느적거리는 강물을 타고

나는 서투른 배 한척되어 광장의 한 모퉁이 휘젓고 있다.

열기에 얼음덩어리 가슴속을 흘러내리는 욕망이 솟구치고

나의 시선은 저멀리 광장을 벗어나 젤라또 가게를 찾는다.

중심에 자리한 청동색 기마상 아래 노닥거리는 비둘기

여기에도 삶은 움직인다 광장이라 모여든다. 비둘기도 사람도

 

짙게 드리워지는 그늘은 점령군이다,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두오모광장의 여름바다는 비둘기 천지. 사람반 비둘기반

여행길 정신들이 이리저리 물장구 튀겨낸다. 방향도 없이

내 안에 깃들어 있는 낯선 설레임들 벽들을 께트리고

몽롱한 하루살이 비둘기 오물들 밟힐까봐 갈지자 걸음걸으며

한무리 흑인들 야유소리 경멸로 던져버리고 지하철 타러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