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편 잡기장 한구절 255

211222. 타일 위에 흐르는 세월- 올림픽공원

타일 위에 흐르는 세월- 올림픽공원역에서 근육질에 솟아오른 검푸른 핏줄은 끝없는 인고의 흐름이었다. 불끈불끈 꿈틀거리는 생명의 약동은 비장함의 응축 덩어리 거친 황야에 한줄기 물길은 삶을 흘리고 물길을 찾아 헤매는 생명의 뿌리들은 야무지게 대지로 숨어들어 어둠을 뚫어재낀다. 크레파스로 덧칠해놓은 뭉개지는 삶 켜켜이 시간의 변주들은 영겁의 노래 무너져 내리는 모래알들은 험난한 여정 심난해지는 세상사들은 사막의 폭풍 모든 것들이 잠들어버린 한 장의 타일로 박제되어 여지없이 시간의 단면으로 잘려버렸다. 수 많은 절벽들의 틈 사이로 빠끔이 아프고도 서러운 울음소리들 새어 나오고 외골수 힘줄처럼 지난 일 끈질긴 한풀이 나는 손을 올려 살며시 쓰다듬는 위로를 남긴다.

211211. 박제된 검은 눈동자를 마주 본다는 것은

박제된 검은 눈동자를 마주 본다는 것은 검은 눈을 만든다는 것은 내가 나를 비추는 것 가슴팍에 꽂아 드는 어떤 비수다. 수많은 동심원이 검은 눈으로 뭉친다. 감고 또 감고 감기고 또 감기고 검은 눈을 행해서 돌고 도는 모습은 나를 향해 밀려오는 세상살이의 귀결을 향한 응시 이웃들의 안 깐 힘도 검은 눈이 되어 나를 거든다. 나는 나를 볼 수 없는데 나는 나를 보려고 나 또한 검은 눈을 만들어 마주 섰을 때 모든 흔적은 사라지고 오로지 검은 눈 하나로 뭉쳐버렸다. 날카롭고 뾰족하게 심장을 지르는 악소리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검은 눈동자의 검은빛은 무심하게 나를 찌른다. 막막하고 답답하고 무서운 눈으로 나의 블랙홀은 마주 보는 나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211221. 선비족 북위 나라의 어느 행렬을 보고

선비족 북위 나라의 어느 행렬을 보고 멋진 낭자는 멋진 미소를 짓는다. 당당하고 품위도 널찍하고 몸가짐도 여유롭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젊고 여유롭다는 것은 가진 이의 행복이다. 도로변에 사람들의 속삭임이 보인다. 부러움과 시샘의 소리 굴복과 불복의 소리 여러 가지 소리들이 소리소리 지저귄다. 하늘은 푸르고 해는 따뜻하다. 북방의 추위가 걸쳐 놓은 두툼한 옷자락에도 행렬은 즐거움이 가득하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보이고 싶어 앞 장선 말머리에도 아끼는 마음을 씌웠다. 다소곳이 장삼에 손을 읊조리는 휘하들은 가마에 실어올 이 아니면 실어갈 이 느릿느릿 위세를 나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느 나라나 가진 이들은 걷는 걸음 타는 걸음에 햇볕이 거침없이 짱짱하다.

211221. 북 위의 수수해서 어여쁜 여인네들.

북 위의 수수해서 어여쁜 여인네들. 태초에 흙으로 빚은 인간은 벗었어도 부끄러움을 몰랐더라. 흙으로 빚어진 북위의 여인네들은 일천 칠백여년을 훌쩍 넘어섰어도 부끄러움이 없다. 소박하고 두툼한 옷차림에 옷 매무세 단정하고 미소는 평화의 꽃으로 피었다. 살포시 감은 눈매엔 장인의 염원이 기도로 젖어들고 자욱한 안개처럼 순백이 아른거린다. 튕기는 무희의 악기 소리 흩날리는 팔 가락과 손마디에 곱게 펼친 치맛자락이 요동을 한다. 애초에 흙으로 빚었으되 입었어도 부끄러움을 몰랐더라. 북위의 여인들은

211221. 짐승? 인간? 신? 반인반수 앞에서

짐승? 인간? 신? 반인반수 앞에서 짐승만도 못한 인간 개만도 못한 놈 사람은 사람이어야 한다는데 북위 전에 출품된 네발 달린 토용 앞에서 날개인지 뿔인지 꼬리는 야무지게 휘 말았다. 반수가 부릅뜬 채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본다. 그리스 신화 속 어떤 반인반수 짐승인가 인간인가 신인가 종횡무진 반인반수 신도 되고 인간되고 짐승도 되고 속 마음은 생각을 타고 빛도 되었다 어둠도 되었다 회칠한 무덤도 되었다. 짐승보다 나은 인간 개 같은 인간 사람 같지 않은 인간아 네가 사람이냐 인간이 되거라 한 때는 지구를 떠나거라 배추머린 떠드는 말 유행이었지 아마도 주구장창 심란한 세상이 사람 얼굴을 한 짐승 앞에서 아프고 쓰린 고행의 삿된 힘이 무거웠겠지. 무덤을 지킨다는 반수 앞에서 사람이 되어 보련다.

211221.북위 유물전 삼존불 앞에서 드는 생각은-한성백제박물관

북위 유물전 삼존불 앞에서 드는 생각은 선비족 선비의 나라라고 들어서인지 친근함은 아닌데도 달리 친절하게 익숙한 그 한마디 한성백제박물관의 북위 전 선비의 나라가 아닌 선비족의 나라 족이라는 글자가 애써 다르다. 삼존불 앞에 서있다. 삼이라는 수는 일 더하기 일 더하기 일 공평만 하더라도 너는 내 것 나는 네 것이란다. 삼존불은 머리불과 협시불 둘은 다른 한 몸들 의지하고 돌아보고 채워준단다. 우선은 제일 불의 모자람을 그리고 이 삼불은 서로의 모자람도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다른 삶의 빈 틈을 서로 감싸주라고 제각기 다른 손짓으로 복을 내리고 호젓한 미소로 권유를 한다. 고구려 신라 백제도 삼존불의 나라 이건만 북위도 삼존불의 나라였었네 이웃 나라도 우리나라도 동방의 모든 나라도 백성들은 삼존불을 참으로..

211221. 올림픽 공원에 들어설 때면 포물선 하나가.

올림픽 공원에 들어설 때면 포물선 하나가. 올림픽 공원에 들어설 때면 유유자적 대지를 바라본다 토성이 도도히 흐르고 나무는 자유롭다. 어느 곳 보다도 새들은 낙원에서 지저귀고 날고 마른 마음은 이슬비에 적시는 옷자락이다. 두 팔을 가득 벌린 반원의 흔들림은 간당 거리는데 두 쪽 하늘로 치솟은 붉은 서기는 파란 냉기 속으로 불을 뿜는다. 들어설 때는 공원의 숲과 땅과 언덕이 환호를 지르고 날 때에는 도심의 아파트들이 날름 올라선다. 천사의 품 안에 들어선 것처럼 날개에 비치는 햇볕으로 응달과 양달의 뒤틀린 새끼가 꼬인다 그대는 받아들이는가 거대한 포옹하는 포물선이 뜻하는 바를 내 마음은 포물선의 끝을 향한 음지와 양지의 엇갈림에도 올림픽으로 들어설 때 그리고 날 때 새 하늘과 새 땅을 설레는 심장 소리를 ..

211221. 올림픽 공원의 엄지손가락

올림픽 공원의 엄지손가락 과시가 극을 달했다 하늘을 찔렀다 위용인가 만용인가. 제일인가 꼴찌인가 아집인가 자부심인가 태양 앞에서 당당하다. 태양신 앞에서 태고를 저버리다니 우상일까 아닐까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고 손가락 하나 밖에 안된 주제에 역설일까 아닐까 황금빛은 황홀하다. 엑스터시의 희열 조무라기 주제에 감히 우뚝 솟았다. 용기를 가져라 으뜸이다 제일이다 우쭐우쭐 그래 봐야 손가락 하난데 그래도 엄지손가락이야 어우 챙피해 낮 간지려

211219. 계란 판이 길 가에 버려졌다.

계란 판이 길 가에 버려졌다. 잿빛 우중충한 색체 켜켜이 쌍인 침침한 줄무늬 재생의 길을 마치고 또다시 어떤 부활을 맞이하려나 흔하지 않은 모습이 되어 길가에 수북이 버려진다. 누군가 어디로 쓰레기 청소차 아니면 허리 굽은 리어카 할머니 고된 생은 마감이 되고 더 헤어질 것도 없는 잿 빛 너덜너덜 세상 하직할지라도 예쁘고 싶은 할머니의 고운 빗질 주름살은 머릿기름에 반짝거린다. 종말은 그렇게 다가와야 하는데 파쇄되는 아픔이 함께 할 때는 몸부림치며 소나기 처럼 한바탕 울고 말리라. 길 가에 내 버려진 계란 판의 슬픈 소리는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다. 나도 한 때는 따뜻하게 웃었노라고

절 마당을 거닌다는 것은-일본 교토

절 마당을 거닌다는 것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 교토 법륜사 인적이 없는 절마당을 조용히 걷는다. 살아있는 이는 죽은 이의 업보를 등에 없고 죽은 이는 살아있는 이의 적선을 가슴에 안고 스산한 인생살이 전설이 오며 가며 배회를 한다 돌 동자에 얹혀있는 앞치마에서는 어린 아가의 못다 한 붉은색 애절이 신당의 문 앞에 말라 비틀어진 대통 안의 나무 가쟁이는 목놓아 흐느끼는 아낙의 한스러운 기도가 담쟁이의 덩굴처럼 악착스럽게 엉겨 든다 세수대 물줄기는 방울방울 흐르는 듯 마는 듯 뚝뚝뚝 가슴에 맺힌 한을 내려놓으라 씻김굿을 시작하리라 어느 날 어느 하루 절마당을 거닌다는 것은 물이 흘러가는 듯 나를 버리고 내려놓은 것 가버린 세월 오려는 세월 실 한가락 이어가는 것 출구는 없다 나는 방에 갇힌 새 한 마리 사면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