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편 잡기장 한구절

은각사에서 난생처음 보는 모래 정원의 선문답은.

나그네수복 2022. 4. 9. 06:22

 

은각사에서 난생처음 보는 모래 정원의 선문답은

 

은각사에서 난 생 처음으로 만나는 모래 정원.

흰색보다는 회색이고 회색보다는 흰색으로 보듬듬어지는

마주치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안개 같은 메아리 틈에서

간지러울 듯 고운 모래알의 선과 면과 알알들의 다듬이가

감히 옷 길을 스치기도 어려운

하얀 도포자락 하늘거리는 선녀처럼 시야를 가리고

밤하늘에  쏟아지는 유성처럼 번쩍거린다.

저절로 여미어지는 손 자락과 허공 깊이 빠져든 마음 자락은 

행여나 흐트러질까 망가질까 올곧게 서서 한참 동안을

선사들의 엉뚱한 선문답에 홀려서 취해버린다.

 

설치미술을 이야기하고 참여 미술에 거품 물고

포스트 모더니즘을 논하는 헷갈리는 논박의 틈바구니에서

자만에 찬 담론들은 황무지로 변해버린 가시덤불일 뿐

은각사의 모래 정원은 홀로 된 현대인들의 오아시스

사막의 돌풍속에 한 달 만에 나타난 만세를 날리는 물의 정원이다.

거대한 모래 산수 하나에 후지산도 모래성의 모습으로 들어앉고

바다도 섬도 가래질의 모습대로 부처님처럼 좌정을 하고

어렸을 적 이어령 작가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 했겠다. 어떻든

달마대사의 선문답은  왜 동쪽으로 갔을까?

모래 정원의 선문답은 서쪽은 여기라오. 무엇입니까?

 

처음 보는 은각사의 모래 정원은 기상천외의 대답이자

고해라는 인생살이의 깊숙하고 기가 차는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