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편 잡기장 한구절

210323. 목련 그늘 아래에서는 오늘만이 오늘 이란다.-잠실주공5단지

나그네수복 2022. 2. 22. 07:16

 

백목련 피는 3월의 그늘 아래

 

우리 동네 아파트는 15층이다.

사천 세대 중앙공원엔 세월이 얼룩진 청동색 모녀 동상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선이 하늘을 응시하고

봄이면 15층 아파트를 넘나보이는 하얀 목련이 태산같이 피어난다.

 

거실 창문밖에 잔디 뜨락 한구석에 고졸스러운 목련 한그루

겨우내 얼어잠긴 발 뿌리 훌훌 털어내고 

하얀 목련 봄 기운을 뽑아 올리려 안 깐 힘  용썼나 보다

잎이 돋아날 여유도 없이 먼저 꽃봉오리 잔뜩 밀어내었다.

 

아직도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데도 아랑곳없이

눈송이처럼 허공에서 흩날리며 덩실거리더니

정신 홀린 무당꾼 되어 장삼 소매를 하늘 향해 활짝 펼쳐 들었다. 

봄날의 전령은 꽹과리 들고 어서 빨리 봉우리 터뜨려라 선동질한다.

 

고된 겨울 봄을 향한 그리움은 탈탈탈 털어버리고

빈 하늘에 하얀 꽃잎 펼쳐지면서 새봄 맞이 새단장 시작되었다.

길 건너엔 노란 산수유 동심원 퍼지듯이 속삭이며 겨울을 보내려 설득하는데 

활짝 핀 복련 꽃그늘에 서서 반가워 하늘을 우러러본다.

함박웃음 소리가 봄 향기 되어 어깨 위로 소복이 쏟아내린다.

일흔한 번째 겨울까지는 생각을 놓아버리자, 말없이 버려버리자.

삼월의 하얀 목련 그늘 아래서는 오늘만이 오늘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