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주공 5단지의 펌프와 우물 이야기
잠실 오단지 살아온 지 삼십여 년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시간의 족적 하나
펌프와 우물이 뼈대만 남았어도 방청의 푸른색은 여전히 발광 중이다.
벗겨질지언정 바래지 않고 그 때의 품위를 지키려 여태껏 푸르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했을 적만 해도
펌프 물은 약수 비스듬한 먹을 물이었다.
아버지는 새벽마다 물통을 들고 물길러 다녀오시고
식구들은 수돗물보다 펌프 물을 즐겨 마시다
어느 날부터 마시지 말라 금지의 물로 방송을 타고
펌프의 손잡이는 뜯어지고 잠실섬에 지하수는 오염으로 찌든 한강수였다.
아리수도 의심을 받는 노후의 연륜이 쌓여
목마른 행인에게 바가지로 적선하던 우물물은 어느 날부터
돈과 바꾸는 샘물이 되어 백두산 한라산 프랑스까지 길을 내었다.
물이 돈이 되는 플라스틱 통은 쓰레기 차에 재활용품으로 날마다 쌓이고
우리동네 사람들도 오염의 두려움에 떨면서 배앓이를 걱정하였다.
바가지, 두레박, 펌프, 수도꼭지, 거쳐서 물은 돈이라 해도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옛 시절의 미련이 남아있어 아쉬워하는데
무지렁이 잡초가 마중물 담아내던 펌프 통에 들어앉아서
새 싹을 내밀며 코로나의 재앙에도 끄떡없는 생기를 발산중이다.
덩굴손들도 뒤질세라 우물 벽을 타고도 기어오르는 힘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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