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깁슨에 이어 오늘은 펜더(Fender Musical Instruments Corporation)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독 우리나라 뮤지션들에게는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은 펜더. 흥미로운 일화들을 갖고 있는 이곳의 이야기 중 오늘은 간단히 그 히스토리를 되짚어볼까 합니다.
라디오샵 기타
펜더는 창립자 레오 펜더(Leo Fender)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전기제품과 악기를 좋아했던 그는 대학교에서 상경계열을 전공했지만 라디오 수리에 더 큰 열정을 쏟았죠. 졸업 후에도 회계사로 일하다가 결국 그만두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라디오 수리점을 차립니다. ‘펜더 라디오 서비스’는 그의 뛰어난 실력으로 얼마 안가 유명해졌고, 1940년 경 사업을 확장해 소리에 관련된 모든 전기제품을 다루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음악인들에게도 소문이 나고 연주자들이 자신의 악기 수리나 개량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이러던 중 한 고객의 부탁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일렉트릭 기타로 개조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후 펜더의 히트모델 ‘펜더 텔레캐스터(Fender Telecaster)의 초기 형태였습니다. 이후 펜더는 일렉트릭 기타를 독자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것을 ’라디오샵 기타(Radio Shop Guitar)‘라고 불렀습니다.
잠깐 옆길로 새보자면-
깁슨도 그렇고, 펜더도 그렇고 기타를 정말정말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사회생활 시작은 전혀 다른 길이었지만(깁슨은 신발가게 점원, 펜더는 회계사),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대단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죠. 그들의 인생 스토리가 한 편의 영화 같은 감동을 주네요. 그리고 처음에는 여러 상점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했지만, 이제는 거대한 악기상가가 된 낙원상가와도 뭔가 비슷하다는 생각도. ^^
전설의 시작
1945년부터 펜더는 기타와 앰프를 함께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도크와 함께 'K&F Manufacturing'이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50년 ‘에스콰이어(Esquire )’라는 솔리드 바디의 일렉트릭 기타를 출시합니다. 처음에는 이 솔리드 바디의 일렉 기타가 인정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상황은 달라졌고, 이후 ‘브로드캐스터’라는 시리즈의 단점을 보완한 ‘텔레캐스터’ 모델을 발표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죠.
그러나 레오 펜더는 텔레캐스터에서 옥타브 튜닝의 조정기구나 픽업의 울림 등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합니다. 펜더는 이것을 개량하는 쪽보다는 아예 다른 악기를 만들기로 결정했고, 이것의 결과로 탄생한 일렉 기타가 바로 펜더사 최고의 흥행 모델인 '펜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입니다. 이 모델로 펜더는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의 사랑을 받게 되고, 그 중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의 사용으로 펜더 기타의 인기는 수직상승하게 됩니다.
(지미 핸드릭스와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길을 잃은 전설
여기까지 재미난 성장가도를 달리던 펜더사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위기를 맞이합니다. 건강이 악화된 창립자 레오 펜더가 펜더사를 미국의 방송사인 CBS에 넘긴 것이 화근이었죠. CBS는 펜더사 악기의 생산을 늘려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여태까지의 소량 커스텀 생산방식을 버리고 생산 라인업을 대형화합니다. 그러나 무리한 생산 확대는 질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고, 시장에서 외면 받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최고의 인기 모델인 스트라토캐스터마저 생산을 중단할 만큼 상태가 악화됐죠.
전설의 부활
결국 1980년대에 CBS가 경영에서 손을 뗐고, 펜더사는 재도약을 꿈꿉니다. 1982년에 빈티지 리이슈(Vintage Reissues)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50~6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텔레캐스터와 스트라토캐스터를 재생산합니다. 특히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1957년과 1962년 모델인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와 1952년 모델인 펜더 텔레캐스터의 생산에 주력했는데, 이는 엄청난 성공을 나으며 펜더사의 재기를 이끌었습니다. 이후 1985년에는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고가형의 펜더기타를 생산하는 '커스텀 샵(Custom shop)'과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저가형 모델인 '스탠다드(Standard)'를 출시하여 다양한 소비층에게 일렉트릭 기타를 공급했습니다. 특히 유명 음악가나 기타리스트들이 직접 기타의 디자인에 참여하거나 그들의 요구가 반영된 커스텀형 기타모델인 '시그네처(Signature)'와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오랫동안 사용한 기타의 복각판인 '트리뷰트 시리즈(Tribute Series)'를 출시하여 많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죠. 지금도 이 시그니처와 트리뷰트 시리즈들이 고가에 팔리는 기사들을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Classic Series 60's)
마지막으로 펜더사의 시리즈별 정리입니다.
스콰이어(Squier)
인도네시아,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저가 생산라인. 실제 펜더라인의 컨셉과는 다르게 출시된다. 화려한 그래픽 디자인이나 정통에서 약간 벗어난 컨셉, 미니 기타 등으로 초급자나 여성층을 노리는 제품을 다수 내놓고 있다. 저가형 모델이기에 고가형의 펜더 브랜드와 차별하기 위하여 스콰이어란 네임을 사용 중이다.
펜더 멕시코(Fender Mexico)
멕시코의 엔세나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펜더. 오리지널 펜더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보급형 저가모델의 생산을 맡고 있다. 주로 중저가형 신형 모델을 생산하며 스탠다드(Standard)시리즈도 생산하고 있다. 환경법이 미국보다 느슨한 멕시코에서 생산되기에 기타에 입히는 도료 선택의 폭이 넓어 다양한 형태의 기타를 생산 중.
펜더 제팬(Fender Japen)
1980년경 일본의 판매업체인 칸다 쇼카이(Kanda Shokai), 야마노 뮤직(Yamano Music)과의 협상을 거쳐 1982년 3월에 설립된 펜더 제팬(Fender Japan)에서 만들어지는 모델. 생산은 아이바네즈 기타의 생산회사로 유명한 후지겐 악기(Fujigen Gakki)가 담당하게 되었다. 현재는 경영권이 일본 악기 회사인 Greco로 넘어갔기 때문에, 엄연히 말하면 미국의 오리지널 펜더사와는 독립된 별개의 펜더 제조회사이다.
1980년대 펜더사의 빈티지 리이슈 프로젝트를 통하여 만들어지는 텔레캐스터와 스트라토캐스터 모델들이 펜더 제팬의 공장에서도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미국의 공장보다 먼저 만들어짐과 동시에 품질도 좋은 편이라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오리지널 펜더는 회사내부 사정으로 빈티지 모델의 기타생산이 늦게 이루어졌는데, 이때 수입된 질 좋은 펜더 제팬의 기타들이 인기몰이를 한 것이다.
현재 펜더 제팬의 기타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되지는 않지만, 높은 품질로 인해 중고 악기 시장에 일제 팬더들이 간간히 눈에 띄고, 특히나 스트라토캐스터는 구매 요구가 가장 많은 편이라고 한다.
펜더 아메리칸(Fender American)
펜더의 오리지널 스텐다드 라인업. 미국에서 처음 세워진 펜더를 대표하는 모델로, 미국의 코로나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리이슈 텔레캐스터나 스트라토캐스터 등 고가의 펜더 일렉트릭 기타들은 여기서 생산됨.
펜터 커스텀 샵(Fender Custom Shop)
특별한 퀄리티의 펜더 기타가 생산되는 라인. 일부러 낡아 보이는 외형으로 처리한 모델을 주로 생산하여 빈티지 기타의 느낌을 주는 모델(레릭 Relic)이 주를 이룬다. 그 외에 아티스트들의 시그니쳐 모델들이 생산되기도 함.
MBS 시리즈(Masterbuilt Series, MBS)
Masterbuilt의 약자. 기타제작의 장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 내는 수제품 모델. 장인의 개성에 따라 최상급의 질을 지닌 다양한 사양의 모델들이 생산되며 한정 생산되기에 가격이 매우 비싸다.
트리뷰트 & 시그니처 모델(Tribute, Signature Series)
‘시그니처 모델’은 유명 음악가나 기타리스트들이 직접 기타의 디자인에 참여하거나 그들의 요구가 반영된 커스텀형 기타를 가리키며, '트리뷰트 시리즈(Tribute Series)'는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오랫동안 사용한 기타를 완벽하게 복제한 복각판이다.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인 제프 벡과 잉베이 맘스틴, 에릭 클랩튼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기타들이 트리뷰트 시리즈로 만들어졌는데, 특히 에릭 클랩튼이 1956년 여러가지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부품들을 조합하여 만든 수제기타인 '블랙키(Blackkie)'의 트리뷰트&시그니처 모델이 매우 유명하다. 블랙키의 트리뷰트 시리즈는 2006년에 2,000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275대 한정판매 되었는데, 7시간 만에 매진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