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0. 서울 잠실에서 탱자를 만나자 생각나는 추억 두 가지
서울 잠실에서 탱자를 만나자 생각나는 추억 두 가지
남도의 남평에 살던 때
건너편 교회당과 내가 살던 집을 가로막은 길고 긴 골목길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개 구멍도 없이 탄탄 절벽이었다.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아버지 따라 고향 떠나 머물던 시절
흰옷입은 사람들이 오글거리는 남평장터 여기저기에
쌓아놓은 날 땅콩 더미 한주먹씩 알게 모르게 주머니에 집어넣는 꿀재미는
네이놈 한마디로 깜 놀래면서도 굳이는 말리지 않던 어른들이
지금 세상에는 생각조차 못할 소통의 나무람이었지.
내 동생 순임이가 집에서 태어났던 날에는
어머니는 곧 바로 부얶에서 불을 때시고
내어민 내 검지손가락을 꼭 잡고선
한동안 감고만 있어 장님같던 눈을 사르르 뜨던
부드럽고 강한 손 힘의 촉감은 지금도 오감이 떨린다.
남도의 보성에 살던 때
집으로 향한 언덕바지 오르는 숨가쁜 길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오른쪽으로 줄지어 범접을 금했다.
야산 언덕을 달음질해야만 학교를 갔던 국민학교 4학년 시절
호랑나비 애벌레는 구물구물 탱자나무 잎을 기어 다니고 있었지.
치기 어린 생각에 호랑나비를 키우겠다고 동심을 부리다
죽였는지 살렸는지 칠십이 되어버린 노인의 기억은 가물가물
대나무 쪼개고 갈아 살을 만들고 가오리연 꼬리 길게 달아서
날아오르면 신나게 뛰어 달리고
연은 더높이 날아올랐던 언덕 위에 밭두렁은 윤곽이 뚜렷하다.
축구공 하나 얻어서 재미가 들려 하루 종일 공차기에 정신없는데
그러다가 병날라 아버지의 한마디
결국에는 허벅지에 가래토가 곪아버리고 통증에 견디다 못해
생살을 갈라내는 병원으로 달리던 어부바의 시절이 있었다.
잠실에서 우연히 만난 정든 손님 탱자나무가 너무 반가워
날카로운 가시로 고름을 따듯 어린 시절을 쿡쿡 찔러서 살려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