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편 잡기장 한구절
210911. 잠실 고수 부지에는 모래가 주인인 풍경이 있다.
나그네수복
2022. 3. 25. 05:47
잠실 고수부지에는 모래가 주인인 풍경이 있다.
없어져 버린 한강의 모래 벌들은
알게 모르게 마음 구석에 비어있는 한강을 향한 미련이었다.
둑을 쌓고 나무를 심고 수영장을 만들고 잔디가 돋는 댓가로
한강대교 모래 벌에서
대교 밑을 날아다니던 국군의 날 신나는 비행기 곡예는
뚝섬 모래밭 수영장에서
울창한 소나무 그늘아래 웃옷 벗고 홀라당 강으로 뛰어들던 그림은
광진교 모래 사장에서
모래 집 짓고 워커힐 바라보며 물장구 치던 시절은
한 낮 빈 주머니속 추억거리
큰 일이 생길 것 같은 금단의 물가로 변해버렸다.
조용하던 잠실 고수부지 어느 시절에 트럭들이 부르렁 거렸다.
거대한 몸체를 사선으로 기울이고 모래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널찍한 직사각형으로 모래가 깔리고
모래변을 따라 시멘트 길 사람 길이 놓이고
발바닥에는 사각사각 해수욕장의 모래가 지린다.
잃어버린 시절이 포동포동 촉감을 간지렸다.
모래밭에서는 비치발리볼 대회가 한참이었다.
바닷가 아니면 텔레비전이 아니어도
잠실벌 모래밭에서 햇볕에 그을린 살갗들이 꿈틀거렸다.
물과 땅은 뚝방따라 나몰라라 헤어졋건만
거북이 모래집은 물없이도 아이들이 맨손으로 다시 짓는다.
강 건너 아파트들
강 둑길에 쉼터 원두막 하나
모래사장 건너편 띄엄띄엄 가로수들
신나게 길을 달리는 자전거
산책하며 사색중인 느슨한 사람들
길가에 텅빈 의자들
발자국들이 어지러운 모래사장에 갈채를 보낸다.
만인들이 머무를 곳 기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물과 모래가 어우러져 운문사의 새벽송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린 아이가 되어 모래벌에 책상과 의자를 놓아 소꼽놀이를 즐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