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3권 6편 가도 가도 내 못 가는 길 중의 지팡이 부분 본문.
부모상에 대나무와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 것은 그 나무의 속이 비어 잇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물론이고 오동나무도 다 자라면 속이 메워지지만 지팡이를 만들 만큼 어려서 아직 크기 전에는 비어있다. 아무 사심없이 자신을 모두 비워 내고 존재의 천연심(天然心)으로 돌아가 우주 정기의 공간에서 부모와 자식이 아무 걸린 데 없이 서로 감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충정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나면서부터 제 한 몸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니 죽순에 응축된 마디 수 그대로 일 년 안에 다 커 버린 뒤 더 자라지도 줄지도 않으면서 사시 사철 푸르고 청청하다. 그리고 마디마디 절도가 있어 엄준한 성현 군자 그대로이다.
대나무를 베어 만든 피리나 대금 단소 같은 악기에서 울리는 음향을 율(律)이라 하는데 이것은 우주 천지 음양의 기운 중에 양성 소리이다. 양(陽)은 하늘의 기운을 받은 것으로 아버지를 상징하니 부상(父喪)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 것은 아버지의 정신을 받들어 추모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대나무의 마디마디는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슬픈 마음의 옹이를 나타내며 더울 때나 추울 때나 해가 바뀌나 변함없이 추모의 마음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오동나무도 겉으로 보아 아무 마디도 없는 것 같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에 얼른 안 보이는 마디가 가다 있고 가다 잇고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깊은 어머니의 자애 심정과 같은데
오동은 베어서 거문고 를 만든다. 오동 중에서도 석산(石山)에서 큰 오동은 소리가 짱짱하여 깊고 맑은데 이것은 여(呂)라고한다. '여'는 음성 소리이다. 음(陰)은 땅의 기운을 말하는 것이니 어머니를 상징하여 모상(母喪)에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고 울며 어머니 정신을 그리워 하고 새기는 것이다.
대는 차고 오동은 다숩다.
나무의 성품과 온도가 그러하메 음률도 대나무로 만든 악기는 폐부를 찌르며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심정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대나무 잎은 서슬이 날카로우며 오동나무 잎은 크고 넓어 치마폭 같다. 그러니 이 율과 여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때 비로소 율려(律呂)가 되어 심원(深遠)하고 그윽한 현묘에 이르듯이 아버지와 어머니 의 정신과 기운을 빈 마음으로 받아들여 그 혼백과 통하고자 하는 자식의 효심이 지팡이에 간곡하게 어리어 있는 것이다.
또한 대나무의 겉마디나 오동나무의 속마디처럼 정연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사람이 가고 오는 것 또한 그 한 마디인 것을 돌아보게 하고 하나의 마디가 끊어져도 또 다음 마디가 이어져 놓이높이 커오른 이 나무들을 바라보며 조상과 부모와 자식이 서로 그와 똑같은 이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이 대나무 지팡이 저장(저杖)이요, 오동나무 지팡이 삭장(削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