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813. 테르니미 역 근처 등잔 밑 그림자를 지우지 못했다.
테르니미 역 근처 등잔 밑 그림자를 지우지 못했다.
로마의 첫 걸음은 피렌체에서 타고 온 열차가 내려준 곳 테르미니 역
생전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드디어
열차에서 줄곧 내내 기다리고 설레이던 로마로의 첫 진입
숙소를 찾아 역을 나서 건너는 생면부지 낯선 길
푸르스름한 모습으로 몸통을 비워버린 교황 바오로 2세는 첫 기이함
뒤로 두고 오락가락 서툰 걸음 찾아낸 숙소에서 머무를 동안
하루에도 몇 번이나 멈추지 못하고 그분의 옷자락을 스쳐만 갔다.
몸통 아닌 품속으로 끌어당기는 자석같은 그 몸짓을
공화국 광장 로터리 건너편에는
로마 욕장이 허물어져 너덜한 자태 을씨년스러운데
갈색으로 녹슬어버린 청동문이 황토색 벽돌들을 벗어나질 못하고
다리 없는 아니면 다리 묻힌 사람들의 조각들이
아마도 성인일 듯 십자가로 몸을 가르고
천사 역시 두발 없이 하늘에서 순교자를 내려다본다.
엄숙하게 감싸 않는 분위기가 신 앞에 선 회개의 죄인이렸다.
문 앞에는 동전통을 앞에 둔 여인네가 눈길도 주지 않고 적선을 준다.
끝내는 욕장의 모습을 닮아버린 성당문을 열지 못하고 뒷자락만 남기고 말았다.
공화국 광장 로터리에는 무지개가 신통한 분수대가 있어
신화를 곁들여 하루 종일 옛 로마를 열심히 뿌려대는데
무슨 이야기 전하는지 제대로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다.
테르미니 길 따라 늘어선 로마 박물관에는 기다란 프란카드 늘어뜨리고
걷는 길 멈춰라 눈길을 들려보라 재촉하는데
모르겠다 팽겨 치고 뿌리치는 무정한 걸음이 몇 번이던가.
끝내는 궁금증만 남겨두고 이제 와서 아쉬워서 다시 그린다.
그래도 로마는 지구촌의 옛 모습이 내 그림자처럼
뗄 수 없는 피붙이처럼 나를 따라다니니
오늘에야 새삼스레 밟아보는 그림자처럼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 반갑고 반갑다.
비록 그림자만 밟았을 지라도 버킷리스트를 확인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