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그라나다- '알바이신'의 해석센터의 본거지다.190421
알바이신의 중심부, 다로 강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거리 사이와 라 알함브라 실루엣 아래에는 나자리 카사 자프라가 서 있다. 14세기에 왕국의 중요한 가문이 안달루시아 귀족들이 집과 저택들을 지은 알바이친의 교외인 액스카레스나 델리테 지방의 중앙에 세워졌다.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거점인 그라나다(Granada)는 기독교 정복이 나자리 영토를 획득하고 있었기 때문에 15세기의 상당 부분을 수많은 난민들을 보호했다. 알바이신의 인구밀도는 사실상 넘쳐났고, 이는 보통 카사 자프라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건물에 층수를 더 추가함으로써 주택의 확장에 이르게 된다.
그라나다 정복 후, 가톨릭 여왕 이사벨은 자신의 충실한 비서 돈 에르난도 데 자프라에게 넘겨주었는데, 그 중에는 나자리 궁전 저택이 차지하고 있던 여러 줄거리인 카사 자프라가 있었다. 돈 에르난도와 그의 아내가 죽은 후, 유언과 증언에 의해 그 재산은 수녀원 산타 카탈리나 데 시에나를 위해 사용되었다. 이 수녀원은 거의 온전하게 보존되어 오늘날 카사 자프라로 알려져 있다.
수세기 후인 19세기 말 알마그로 카르데나스와 유명한 라파엘 고메즈- 모레노에 의해 카사 자프라가 공개되었지만, 카사 자프라의 가치는 몇 년이 지나서야 공개되었다. 1931년, 자프라의 수녀원 전체가 역사적 예술적 기념물로 선포되었다. 1946년 그라나다의 시장인 갈레고 부린이 그 미묘한 상태와 보존의 필요성을 알고 그라나다 시의회를 위해 집을 취득한 날을 표시했다. 이 순간 이후, 2010년과 2012년 사이에 마지막으로 행해진,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러 차례의 복원이 있었다. 1985년, 그 집은 문화재 보호의 최고 수준인 문화 관심사가 발표되었다.
오늘날 이 집은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된 그라나다 근교 알바이신의 현관과 정보센터로 변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라나다의 관광계획 이후 장려되어 온 야심찬 프로젝트인 '알바이신'의 해석센터의 본거지다.